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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의 저주

에구에구 2012. 3. 28. 14:56

 



 

나도 한땐 여행을 참 좋아했지

지금처럼 네비 가 흔치 않던 시절 날뽕의 별명이 지도 책이야 

지금처럼 고속도로 가 뚫리지 앉았을 때 설악산을 넘는 방법은 다양했지

그날의 입맛에 따라 설악의 오대령을 골고루 넘어다녔는데 운두령대관령.미시령,

한계령구룡령 그 중에서도 역시 제일 많이 넘게 되던 길은 역시 대관령이야 

  

언젠가 대관령을 넘어 잠시 고민하다가 우회전 하여 강릉을 둘러 본적이 있었는데

거기 그 유명한 오죽헌이 있더군 신사임당 이란 분의 위패가 있는 곳이지 

거기서 난 그분의 업적을 기리는 사적을 둘러 보았어 

머나먼 한양 땅을 그리도 자주 다니시면서 엄청난 고생을 하셨다고 적혀 있더라고

난 감동했지 옜날엔 차도 없고 길도 험했을 텐데 그 험준한 산길을 어찌 다녔을까 

근데 돌아오는 길에 내 생각은 바뀌었어 


그분은 지체 높은 양반이었지 

양반이 자기가 걸어서 이 험한 산길을 넘었을 리는 만무하고 가마를 메는 머슴과 

시중을 드는 하녀가 수행 했을 텐데 그 사람들의 고생은 왜 기록되지 못했을까? 

가마 속에서 편히 간 사람은 위인이 되고 왜 똥 오줌 받아가면서 그 무거운 가마를

지고 이 험한 산길을 넘었던 사람들에 대해선 사람들이 기억해 주지 않을까 

  

이 몸이 건설현장 잡부로 일하고 있다는 말은 전에 한번 했지? 

그래 아파트 현장엔 타워크레인이 있어 거 왜 김진숙씨가 농성한다는 그거 

그런데 크레인 기사 일자리는 아주 경쟁이 치열한 자리더라고 

현장소장도 도저히 힘을 쓸 수 없는 치 외 법권 지역이기도 하지 

그 자릴 정할 수 있는 곳은 민주노총 한국노총 그 둘만이 타워크레인기사 

자리를 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더라고 


크레인 주인 이라도 그 자린 함부로 앉을 수 없어 그랬다간 바로 실력행사에
 

들어 가는데 그게 바로 점거 농성이야 


우리 현장엔 다섯 개의 크레인이 설치되었는데 그 중에 셋이 민노총 둘이 한총이야
 

한데 바로 그 막강한 민노총 백으로 올라간 기사가 쫏겨나는 일이 있었지 

취직한 기사가 서울 민노총 소속이었는데 인천 지부에서 타 지역에서 영업한다고 

끌어 내리더라고 참 시끄러웠지 현장소장은 수천 만원의 손해를 보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고 그들의 다툼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지 

결국은 현장 측에서 그 서울민노 소속의 기사를 선처해주는 것으로 정리됐지 

그 과정엔 차마 글로도 쓸 수 없을 정도의 추악한 거래가 오고 갔고…… 


그들이 그런 소동을 벌이는 동안 노동조합에도 가입 못한 일용직 노동자들은
 

정말 큰 고통을 겪어야 했어 

하지만 현장소장도 사무실 직원들도 심지어 같이 일하는 노동자들도 그들에겐 

관심을 두지 않았어 

그 빨간띠 두른 힘센(소장도꼼짝못하는)사람들에게 열광했지 

난 일용직 노동자들이 민노총의 그들보다 더 동정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안 해 

단지 그들의 가진 신분의 차이가 차별로 나타나는 현상을 부정하고 싶은 거야 

자기 밥그릇 자기가 챙기는걸 누가 모라 하겠어 당연한 거지 

하지만 이런 말단 노동판에서 까지 승자에 대한 예찬과 패자에 대한 저주를 보고 

싶지 않다는 거지